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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 (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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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야월은 대한민국의 작사가로, 본명은 박창오이다.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로 불리며, 수많은 히트곡을 작사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56년 대한레코드작가협회, 1964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의 설립에 참여했고, 1966년 국제가요대상 작사상, 1991년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대표곡으로는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 사랑〉, 〈소양강처녀〉 등이 있으며, 수천 편의 노래를 작사했다. 일제강점기 말 친일 행적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으며, 이에 대해 사과했다. 2012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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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 (작사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반야월/진방남
본명박창오
예명추미림
박남포
남궁려
금동선
허구
고향초
옥단춘
백구몽
불로초
처녀림
국적대한민국
출생지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마산부
(現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종교불교
장르트로트
활동 시기1937년 ~ 2012년
직업작사가
가수
극작가

2. 생애

반야월(본명: 박창오)은 경상남도 진해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본관은 밀양이며, 추미림, 박남포, 남궁려, 금동선, 허구, 고향초, 옥단춘, 백구몽 등 다양한 예명을 사용했다.

고등학교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학업을 중단하고 충북 청주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숙부에게 의탁해 양복 기술을 배웠다. 그는 청주 지역에서 '노래하는 양복쟁이'로 이름을 알렸고, 여러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이후 조선일보와 태평레코드가 주최한 전국 콩쿠르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진방남이라는 예명으로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을 발표하며 인기를 얻었고, 남대문악극단을 조직하여 악극 제작과 방송극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작사가로서,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소양강처녀〉 등 수많은 히트곡을 작사했다.

1956년 대한레코드작가협회, 1964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 여러 음악 관련 단체 설립에 참여했으며, 국제가요대상 작사상(1966), 공보부장관 감사상(1967), 문화훈장 국민장(1991) 등을 수상했다.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노래를 작사하고 히트시킨 작사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노래비는 전국 각지에 세워져 있다. 고향 마산에서는 그를 기리는 반야월 가요제가 열리기도 한다.[4]

일제 강점기 말 친일 가요를 작사하고 부른 경력[5][6]으로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부문에 포함되었으나, 2010년 6월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무슨 말을 해도 핑계다. 있었던 일은 인정해야 한다"라고 사과했다.[7]

2012년 3월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7]

2. 1. 출생과 성장

경상남도 진해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박창오'''(朴昌吾)이다. 본관은 밀양 박씨이다. 어린 시절은 마산에서 보냈다. '''추미림'''(秋美林), '''박남포'''(朴南蒲) 등 여러 예명을 사용했다.[2]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충북 청주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숙부를 찾아가 양복일을 배웠다. 청주 일대에서 ‘노래하는 양복쟁이’로 알려졌으며, 청주 지역 콩쿠르를 석권하고 조선일보와 태평레코드가 주최하는 전국 콩쿠르대회에서 우승하며 가수로 데뷔했다.[2]

2. 2. 가수 데뷔와 작사가 활동

경상남도 진해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충북 청주에서 양복집을 하던 숙부를 찾아가 양복일을 배웠다. 청주 일대에서 ‘노래하는 양복쟁이’로 통하다 청주 지역 콩쿠르를 휩쓸고 조선일보와 태평레코드가 주최하는 전국 콩쿠르대회에서 우승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진방남이라는 예명으로 발표한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이 대표작이다. 이후 남대문악극단을 조직해 《산홍아 너만 가고》, 《마도로스 박》 등의 악극을 제작했고, 방송극도 집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2]

특히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더불어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노랫말을 많이 작사했다. 〈넋두리 20년〉을 시작으로 자신이 불러 히트한 〈꽃마차〉, 〈단장의 미아리고개〉, 〈유정천리〉 , 〈울고 넘는 박달재〉 , 〈만리포 사랑〉, 〈벽오동 심은 뜻은〉, 〈비 내리는 삼랑진〉, 〈아빠의 청춘〉, 〈무너진 사랑탑〉, 〈산장의 여인〉,〈산유화〉, 〈외나무다리〉, 〈소양강처녀〉 등이 잘 알려진 곡이나, 작사한 노래만 수천 편이 넘는다. 〈소양강처녀〉를 부른 가수는 김태희이며 작곡자는 이호이다.

2. 3. 악극 제작 및 방송극 집필

경상남도 진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다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충북 청주에서 양복점을 하던 숙부를 찾아가 양복일을 배웠다. 청주 일대에서 ‘노래하는 양복쟁이’로 통하다 청주 지역 콩쿠르를 휩쓸고 조선일보와 태평레코드가 주최하는 전국 콩쿠르대회에서 우승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진방남이라는 예명으로 발표한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이 대표작이다. 이후 남대문악극단을 조직해 《산홍아 너만 가고》, 《마도로스 박》 등의 악극을 제작했고, 방송극도 집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2]

2. 4. 관련 단체 설립 참여와 수상 경력

1956년 대한레코드작가협회, 1964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1974년 한국가요반세기작가동지회 등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2] 1966년 국제가요대상 작사상, 1967년 공보부장관 감사상을 받았고, 1991년에는 문화훈장 국민장을 서훈받았다.

2. 5. 친일 행적과 사과

민족문제연구소2008년에 공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부문에 포함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가수로 〈소년초〉, 〈조국의 아들〉 등을 불렀으며 〈결전 태평양〉, 〈일억 총 진군〉과 같은 군국가요 작사에 참여한 경력이[5][6]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반야월2010년 6월 친일행적에 대해 "무슨 말을 해도 핑계다. 있었던 일은 인정해야 한다"며 사과했다.[7]

2. 6. 사망

박창오(朴昌吾)는 2012년 3월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7]

3. 업적과 평가

(요약 및 참조할 원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았으므로, '반야월 (작사가)' 문서의 '업적과 평가' 섹션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참조

[1] 뉴스 반야월, 향년 95세로 별세.."기념관 건립 전인데" http://starin.edaily[...] 이데일리
[2] 뉴스 '가요계의 거성' 반야월 선생, 90세 희작(稀作) “목포의 연정” 음반 출시 http://www.starnstar[...] 스타앤스타 2008-04-28
[3] 뉴스 노래인생 60년, 작사가 반야월씨 http://news.buddhapi[...] 붓다뉴스 2008-04-28
[4] 뉴스 도내 가요제 도입 10년…어떻게 흘러왔나? http://www.idomin.co[...] 경남도민일보 2008-04-28
[5] 뉴스 '가수이자 작사가 진방남의 음악 인생 -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 다시 보기 (39)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8-05-17
[6] 뉴스 `친일명단'에 안익태.최승희 포함될 듯 - 내달 2차 명단 발표...윤극영, 반야월, 장덕조 등도 거론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8-04-28
[7] 뉴스 http://www.idomin.co[...]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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